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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를 몇 년째 쓰면서 물 갈아주는 것 외에는 딱히 청소를 한 기억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물통 안쪽을 들여다보니 바닥에 미끌미끌한 막이 생겨 있었고, 가장자리에는 하얀 덩어리도 붙어 있었습니다. 수증기가 결국 그 물에서 나오는 거라는 걸 다시 생각하니 그동안 그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는 게 꺼림칙했습니다. 그래서 가습기를 제대로 청소해 보려고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가습기는 물을 직접 공기 중으로 내보내는 기기입니다. 내부가 오염된 채로 계속 쓰면 세균과 곰팡이가 섞인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건강을 위해 켜놓는 기기가 오히려 반대 역할을 하게 되는 셈입니다. 가습기 종류별 오염 원인부터 물때 제거 방법, 세균 없이 유지하는 요령까지 짚어보겠습니다.

 

1. 가습기 내부가 오염되는 이유

가습기 내부 오염의 핵심은 바이오필름(biofilm) 형성과 칼슘침착(calcium deposition)입니다. 바이오필름이란 세균이 물이 닿는 표면에 집단으로 달라붙어 만드는 끈적한 막입니다. 물통에 물을 채워두면 시간이 지날수록 표면에 세균이 자리를 잡고, 가습기 내부의 습하고 따뜻한 환경은 세균이 자라기에 좋은 조건입니다. 매일 물을 갈아줬는데도 물통 바닥이 미끌거리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칼슘침착은 청소를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원인입니다. 칼슘침착이란 수돗물 속 칼슘과 마그네슘 이온이 물이 증발하면서 표면에 딱딱하게 굳어 달라붙는 현상입니다. 초음파 가습기의 진동판 주변이나 물통 바닥에 생기는 하얀 덩어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방치하면 초음파진동자(ultrasonic transducer) 성능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초음파진동자란 초음파 가습기에서 물을 미세한 입자로 분무하는 핵심 부품으로, 칼슘이 쌓일수록 진동 효율이 떨어져 가습 성능이 낮아집니다.

 

더 심각한 것은 레지오넬라균(Legionella)입니다. 레지오넬라균이란 오염된 물에서 번식하는 세균으로, 흡입 시 레지오넬라병이라는 폐렴 유사 질환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가습기 물통을 오래 방치하거나 오염된 물을 계속 쓸 경우 번식 위험이 높아집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뒤 한동안 가습기 전원을 켜기가 망설여졌습니다.

 

질병관리청 감염병 예방 자료에 따르면 가습기는 내부 오염 시 레지오넬라균을 포함한 각종 세균과 곰팡이의 번식 환경이 될 수 있으며, 매일 물을 교체하고 주 1회 이상 청소할 때 감염 위험을 효과적으로 낮출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질병관리청)

 

2. 가습기 종류별 청소 방법

가습기는 방식에 따라 오염되는 부위와 청소 방법이 다릅니다. 초음파식, 가열식, 기화식이 가정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입니다. 같은 방법으로 청소해도 방식마다 효과 차이가 크기 때문에 내 가습기가 어떤 방식인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① 초음파 가습기 청소

초음파 가습기는 진동판과 물통 청소가 핵심입니다. 진동판에 칼슘이 쌓이면 가습 성능이 떨어지고 하얀 분말이 공기 중으로 날리는 백분 현상이 생깁니다. 진동판은 면봉에 식초를 묻혀 살살 닦으면 칼슘침착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식초의 산성 성분이 칼슘을 녹이는 원리입니다. 세게 문지르면 진동판이 손상될 수 있으니 힘 조절이 중요합니다. 하얗게 굳어 있던 것이 면봉 하나로 생각보다 쉽게 닦여서, 괜히 오래 방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통은 식초와 물을 1:10 비율로 섞어 30분 이상 담가둔 뒤 솔로 닦고 흐르는 물에 충분히 헹굽니다. 식초 냄새가 남으면 가습기를 켰을 때 냄새가 날 수 있으니 헹굼을 넉넉히 해야 합니다.

 

② 가열식 가습기 청소

가열식 가습기는 물을 끓여 수증기를 내보내는 방식으로, 가습열(加濕熱)이 내부를 어느 정도 살균해 세균 번식 위험이 초음파식보다 낮습니다. 가습열이란 가습기 내부에서 발생하는 열이 세균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를 말합니다. 단, 히터 부분에 칼슘침착이 심하게 생기는 단점이 있습니다. 구연산 1티스푼을 물 1리터에 녹여 물통에 넣고 30분 정도 작동시킨 뒤 헹궈내면 히터에 쌓인 칼슘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습니다.

 

③ 기화식 가습기 청소

기화식 가습기는 필터에 물을 흡수시켜 팬으로 날리는 방식입니다. 필터 상태가 가습기 위생 전체를 좌우합니다. 제품마다 다르지만 보통 1-2개월에 한 번 교체하거나 세척합니다. 세척형 필터는 흐르는 물에 가볍게 헹궈 그늘에서 완전히 말린 뒤 장착합니다. 물기가 남은 채로 다시 끼우면 곰팡이가 생기기 좋은 환경이 됩니다.

 

3. 가습기 위생 유지하는 습관

청소 방법을 알아도 일상적인 습관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금방 다시 오염됩니다.

물통은 매일 비우고 새 물로 채우는 것이 기본입니다. 전날 남은 물을 그대로 쓰면 하룻밤 사이에 세균이 크게 늘어납니다. 귀찮더라도 아침에 가습기를 켜기 전에 물을 새로 채우는 것이 가습기 위생에서 가장 기본적인 습관입니다. 이걸 지키기 시작하고 나서 물통 안쪽 상태가 이전과 달라졌습니다.

 

수돗물 대신 정수된 물을 쓰면 칼슘침착 속도를 어느 정도 늦출 수 있습니다. 수돗물 속 칼슘과 마그네슘이 정수 과정에서 일부 걸러지기 때문입니다. 가습기를 장기간 쓰지 않을 때는 물통을 완전히 비우고 건조시켜 보관해야 합니다. 물이 남은 채로 두면 다음 시즌에 꺼냈을 때 이미 곰팡이가 핀 상태가 됩니다. 작년에 창고에서 꺼낸 가습기 물통에 곰팡이가 있던 걸 보고, 그 이후로는 시즌이 끝나는 날 바로 건조 보관하는 걸 습관으로 들였습니다.

 

환경부 실내공기질 관리 자료에 따르면 가습기 내부 오염은 실내 공기질을 직접적으로 나쁘게 만드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주기적인 청소와 물 교체 없이 사용 시 호흡기 질환 위험이 높아진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환경부)

 

솔직히 말하면 가습기 청소가 이렇게 중요한 줄 몰랐습니다. 물통 안쪽 상태를 직접 보기 전까지는 그냥 켜두면 좋은 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끈적한 바닥, 하얀 덩어리, 그 안에서 나오는 수증기를 매일 마시고 있었다는 게 뒤늦게 와닿았습니다.

 

제가 직접 청소를 시작하고 나서 달라진 건 가습기 상태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습기를 켤 때 찜찜함이 없어졌고, 건조한 계절에 부담 없이 오래 틀어둘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해 산 기기가 제 역할을 하려면 쓰는 사람이 관리해줘야 한다는 걸 가습기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