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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온도를 제대로 설정해 둔 집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다이얼을 중간쯤에 맞춰두고 수년째 그대로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사실 그 중간이 적정 온도인지 확인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냉장고 온도계를 처음 넣어봤을 때 표시된 숫자가 권장 기준보다 한참 높아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냉장고 온도가 중요한 이유
식품이 상하는 건 세균 증식 속도와 직결됩니다. 세균은 온도가 높을수록 빠르게 늘어나는데, 5도에서 60도 사이를 식품 위험 온도 범위라고 합니다. 식품 위험 온도 범위란 세균이 가장 활발하게 증식하는 구간으로, 이 안에 식품이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식중독 위험이 높아집니다.
냉장고가 이 구간 아래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4도 이하로 내려가면 대부분의 세균은 증식이 느려지거나 멈춥니다. 문을 자주 열거나 뜨거운 음식을 바로 넣으면 내부 온도가 순간적으로 올라가면서 세균이 다시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냄새나 변색 없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어서 온도를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치기 쉽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냉장고 내부 온도가 10도를 넘으면 살모넬라균이나 리스테리아균 같은 식중독균의 증식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다고 합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냉장고 적정 온도 기준
냉장칸
냉장칸 적정 온도는 0도에서 4도 사이입니다. 국내 식품 안전 기준과 미국 FDA 기준 모두 4도 이하로 유지하도록 권고합니다. 문제는 다이얼 눈금이 온도를 직접 표시하는 게 아니라 냉각 강도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숫자 3이 항상 4도를 뜻하지 않고, 제조사마다 기준이 다릅니다. 온도계를 칸 중앙에 넣어두고 실제로 확인해 보면 기준보다 높게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냉장칸은 위치마다 온도 차이가 납니다. 문 쪽은 열릴 때마다 외부 공기가 들어와서 가장 온도가 높고, 안쪽 깊은 곳이 가장 낮습니다. 달걀이나 주스를 문 쪽 선반에 두는 분들이 많은데, 달걀은 온도 변화에 민감해서 안쪽에 보관하는 게 낫습니다.
냉동칸
냉동칸은 영하 18도 이하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 온도 아래에서는 세균의 대사 활동이 거의 멈춥니다. 단, 냉동은 세균을 죽이는 게 아니라 활동을 정지시키는 것이라서 해동하면 다시 증식이 시작됩니다.
냉동칸 온도가 영하 15도 수준으로 올라가면 아이스크림이 살짝 녹았다 굳는 현상이 반복되는데, 이렇게 되면 얼음 결정이 커지면서 식감이 나빠집니다. 냉동 식품 겉면에 서리가 두껍게 끼는 것도 온도가 들쑥날쑥하다는 신호입니다.
야채칸
야채칸은 냉장칸보다 약간 높은 5도에서 8도 사이가 적당합니다. 채소는 너무 낮은 온도에서 냉해를 입는 경우가 있습니다. 냉해란 식물 조직이 영하에 가까운 온도에 노출됐을 때 세포가 손상되는 현상으로, 잎채소가 물러지거나 검게 변하는 원인입니다.
오이, 고추, 가지처럼 열대성 채소는 저온에 특히 약합니다. 냉장고 안쪽 깊숙이 넣어뒀다가 하루 이틀 만에 물러진 경험이 있다면 위치 문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채소는 야채칸 앞쪽이나 문 쪽 선반에 두는 게 낫습니다.
냉장고 온도 관리 방법
온도계로 실제 온도 확인하기
다이얼만 믿지 말고 냉장용 온도계를 하나 사서 칸 중앙에 넣어두는 게 좋습니다. 마트에서 2,000~3,000원이면 살 수 있고, 상시 넣어두면 온도 이상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계절이 바뀌면 주변 온도가 달라져서 같은 다이얼 설정이어도 냉장고 내부 온도가 변하기 때문에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냉장고를 너무 꽉 채우지 않기
냉장고 안을 가득 채우면 냉기가 고르게 순환되지 않아 칸마다 온도 차이가 생깁니다. 음식 사이에 공기가 돌 공간이 있어야 냉기가 퍼집니다. 반대로 냉동칸은 빈 공간이 많을수록 문을 열었을 때 온도가 빠르게 올라가서 얼음이나 아이스팩으로 빈 공간을 채워두면 온도 유지에 도움이 됩니다.
앞에만 꺼내 쓰다 보면 안쪽 음식이 계속 뒤로 밀려서 결국 상한 채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안쪽까지 꺼내서 확인하는 습관이 온도 설정보다 실질적으로 더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뜨거운 음식은 식혀서 넣기
뜨거운 음식을 바로 냉장고에 넣으면 주변 음식 온도까지 올라가고 모터에도 부담이 됩니다. 상온에서 너무 오래 두면 세균이 번식할 수 있어서 한 시간 이내로 식힌 뒤 넣는 게 적당합니다. 넓고 얕은 용기에 나눠 담으면 빨리 식습니다. 농촌진흥청 식품 보관 정보에 따르면 조리된 음식은 60도 이하로 식힌 뒤 2시간 이내에 냉장 보관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출처: 농촌진흥청).
문 고무 패킹 점검하기
문 테두리 고무 패킹이 낡거나 틈이 생기면 냉기가 새어 나옵니다. 종이 한 장을 문 사이에 끼우고 닫은 뒤 잡아당겨 보면 밀봉 상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뻑뻑하게 빠지면 정상이고, 쉽게 빠지면 패킹을 점검해봐야 합니다. 패킹 틈에 곰팡이가 끼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식초를 묻힌 칫솔로 닦아주면 어느 정도 회복이 됩니다.
냉장고 온도는 한 번 맞춰두면 끝이 아닌데, 이걸 모르고 수년째 같은 설정으로 쓰는 집이 많습니다. 온도계 하나 사서 지금 당장 확인해보면 생각보다 기준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