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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를 한 송이 사면 다 먹기 전에 절반은 버리게 됩니다. 아직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상태인데 겉이 까매졌다는 이유로 버린 적이 많았고, 냉장고에 넣었더니 하룻밤 만에 껍질이 완전히 검게 변해버려서 먹어야 할지 버려야 할지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상온에 두면 여름에는 이틀도 안 돼서 흐물흐물해지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사는 것 자체가 낭비처럼 느껴질 정도였는데, 보관 방법을 바꾸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바나나가 빨리 상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 나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지 판단이 쉬워집니다. 익은 정도에 따라 보관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에 지금 집에 있는 바나나가 어떤 상태인지 먼저 파악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1. 바나나가 빨리 검게 변하는 이유
바나나가 빠르게 변색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에틸렌 가스 자가 생성이고, 다른 하나는 저온 장해(低溫障害)입니다.
에틸렌 가스는 과일이 숙성될 때 자연적으로 방출하는 식물 호르몬입니다. 바나나는 이 에틸렌 발생량이 특히 많은 과일로, 스스로 방출한 에틸렌이 자신의 숙성을 더 빠르게 앞당기는 구조입니다. 여기에 사과나 토마토처럼 에틸렌을 많이 내뿜는 과일이 옆에 있으면 속도가 더 빨라집니다. 여름에 과일 바구니에 사과 옆에 뒀다가 이틀 만에 바나나 전체가 갈색으로 변해버렸는데, 그게 에틸렌 때문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저온 장해는 냉장 보관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저온 장해란 열대 과일이 적정 온도보다 낮은 환경에 노출됐을 때 세포 조직이 손상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바나나는 13도 이하에서는 껍질 세포가 산화되면서 검게 변색됩니다. 냉장고에 넣었을 때 껍질이 하룻밤 만에 새까매지는 것이 바로 저온 장해 반응입니다. 껍질은 까맣게 변했지만 속을 잘라보면 멀쩡한 경우가 많은데, 이걸 모르고 통째로 버렸던 적이 꽤 있었습니다.
농촌진흥청 농업기술포털 자료에 따르면 바나나의 적정 보관 온도는 13-15도이며, 이 온도 범위를 벗어나면 품질 저하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 농업기술포털)
2. 익은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보관 방법
바나나는 지금 어떤 상태냐에 따라 보관 방법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상태를 구분하지 않고 무조건 같은 방법을 쓰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① 덜 익은 바나나
껍질에 초록빛이 도는 덜 익은 상태라면 상온 보관이 맞습니다. 이 상태에서 냉장고에 넣으면 저온 장해로 껍질만 검게 변하고 숙성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직사광선이 닿지 않고 통풍이 되는 곳에 두는 것이 기본입니다. 한 가지 요령을 더하면 바나나 송이의 꼭지 부분을 랩으로 감싸두는 것입니다. 에틸렌 가스가 주로 꼭지 쪽에서 방출되는데, 이 부분을 막아두면 숙성 속도를 2-3일 정도 늦출 수 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해 봤는데 효과가 생각 이상이었습니다.
② 잘 익은 바나나
먹기 좋게 노랗게 익었는데 바로 먹지 않을 경우, 특히 실내 온도가 높은 여름에는 냉장 보관이 낫습니다. 껍질은 검게 변하지만 속은 멀쩡하게 유지됩니다. 냉장 보관할 때는 한 개씩 분리해서 보관하면 서로 에틸렌 영향을 덜 받아 상태가 조금 더 오래 유지됩니다. 송이째 그냥 넣어뒀을 때보다 하루 이상 차이가 났습니다.
③ 갈색으로 변한 바나나
껍질이 갈색이 되고 당도가 높아진 과숙 상태라면 버리기보다 냉동해두는 쪽이 훨씬 낫습니다. 껍질을 벗겨 한 개씩 지퍼백에 담아 냉동하면 스무디나 바나나 팬케이크 재료로 그대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과숙 바나나는 당도가 높아져 스무디에 넣으면 오히려 더 맛있습니다. 처음에 반신반의하며 써봤는데 이후로는 바나나가 갈색이 되면 오히려 냉동할 타이밍이 왔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냉동 보관 기간은 2개월 이내가 적당하고, 그 이상 두면 냉동 취기가 배어듭니다.
3. 보관 장소와 습관이 신선도를 결정합니다
방법을 알아도 보관 환경이 맞지 않으면 효과가 반감됩니다. 바나나는 다른 과일과 함께 두면 에틸렌 영향을 서로 주고받아 숙성이 빨라집니다. 과일을 한데 모아두는 습관이 있었는데, 바나나만 따로 두기 시작하면서 유지 기간이 달라졌습니다.
바나나를 걸어서 보관하는 것도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바닥에 닿는 부분이 없으면 압력으로 인한 멍이 생기지 않고, 사방으로 공기가 순환되어 습기가 덜 쌓입니다. 바나나 전용 걸이가 없어도 훅에 걸거나 묶어서 두면 충분합니다. 장바구니에 다른 식재료 위에 올려뒀다가 눌려서 한쪽이 갈색으로 변한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는 걸어두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안전나라 자료에 따르면 바나나를 포함한 열대 과일은 저온에 취약하며 적정 온도 이하 환경에서는 조직 손상과 함께 영양 성분 손실도 빠르게 진행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안전나라)
바나나 보관에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껍질 색만 보고 판단하지 않게 된 점입니다. 냉장 보관한 바나나는 껍질이 검어도 속은 멀쩡하고, 갈색으로 변한 바나나는 버릴 게 아니라 냉동할 타이밍입니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버리는 양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이제부터 바나나를 사와서 덜 익었으면 꼭지를 랩으로 감싸 상온 보관하고, 잘 익었는데 못 먹을 것 같으면 한 개씩 분리해 냉장 보관해야 합니다. 그리고 갈색이 됐다면 껍질 벗겨 냉동 보관을 하면 아주 맛있게 바나나를 오래 먹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