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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가 거실 벽에 볼펜으로 낙서를 해놓은 걸 발견하고 급한 마음에 알코올솜부터 꺼냈습니다. 볼펜 자국은 어느 정도 지워졌는데 주변 벽지 색이 흐릿하게 번져버려서 낙서 하나가 훨씬 큰 얼룩으로 불어났습니다. 지우려다 더 키운 셈인데, 그때부터 벽지 낙서는 재질이랑 낙서 종류를 먼저 파악하고 시작하는 게 맞다는 걸 몸으로 배웠습니다.
벽지 낙서 지우는 법
가장 먼저 내 집 벽지가 실크벽지인지 합지벽지인지 봐야 합니다. 실크벽지는 표면에 PVC 코팅층이 있어서 오염물이 벽지 안으로 스며들지 않고 표면에만 머뭅니다. 손으로 눌러보면 탄력이 느껴지는 게 실크벽지입니다. 합지벽지는 얇은 종이 소재라 오염물이 금방 흡수되는데, 한 번 스며들면 어떤 방법을 써도 완전히 없애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 차이를 몰랐을 때 합지벽지에 물을 잔뜩 묻혀서 문질렀다가 벽지가 울어버린 적이 있는데, 그냥 뒀으면 낙서만 있었을 텐데 물로 불려놓은 꼴이 됐습니다.
낙서 종류도 먼저 봐야 합니다. 연필이면 지우개나 식빵 속살로 가볍게 문지르면 됩니다. 연필의 흑연이 빵의 글루텐 성분에 달라붙는 성질이 있어서, 식빵 속살을 뭉쳐서 지우개처럼 쓰면 수분을 남기지 않고 닦아낼 수 있습니다. 처음 이 방법을 알았을 때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해보니 연필 자국이 꽤 깔끔하게 없어졌고, 식빵 하나로 된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볼펜은 유성 잉크라 물로는 전혀 지워지지 않습니다. 물파스나 손소독제의 알코올 성분이 잉크를 녹이는 성질이 있어서, 면봉에 물파스를 묻혀 낙서 위를 톡톡 두드리고 마른 화장지로 닦아내는 방식을 씁니다. 세게 문지르면 주변까지 번지거나 벽지 색이 변하는데, 저도 빨리 지워지겠지 싶어서 세게 문질렀다가 낙서 주변이 번진 경험을 하고 나서 그 뒤로는 절대 문지르지 않게 됐습니다.
한국소비자원 생활안전 자료에 따르면 가정에서 세정제를 잘못 사용해 벽지나 가구 표면이 손상되는 사례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으며, 용제 계열 세정제는 반드시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부위에 먼저 테스트한 뒤 사용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소비자원).
볼펜 자국 제거
볼펜 낙서는 실크벽지라면 어느 정도 지울 수 있지만 합지벽지는 잉크가 이미 종이 섬유 안으로 스며든 상태라 표면을 아무리 닦아도 남습니다. 합지에 볼펜이 그어졌다면 욕심을 버리는 게 낫습니다.
실크벽지라면 물파스부터 써보는 게 무난합니다. 면봉에 물파스를 조금 묻혀서 자국 위를 가볍게 톡톡 두드리고, 잉크가 녹으면 마른 화장지로 닦아내는 방식입니다. 힘을 주면 알코올이 주변 벽지 색까지 빼버리니까 약하게 여러 번 반복하는 게 포인트입니다. 저는 이 방법으로 꽤 굵게 그어진 볼펜 자국을 거의 안 보이는 수준까지 지운 적이 있는데, 30분 넘게 반복했더니 팔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자국이 사라지는 걸 보는 뿌듯함이 있었습니다.
락스를 쓰는 분들도 간혹 있는데, 염소 성분이 잉크를 탈색시키긴 하지만 벽지 색도 같이 빠집니다. 저도 한 번 써봤다가 낙서 지운 자리가 오히려 더 하얗게 도드라져서 결국 부분 도배를 하게 됐습니다. 그 뒤로는 락스는 꺼내지 않게 됐습니다.
크레파스 자국 제거
크레파스는 왁스 기반 유성 성분이라 알코올보다 기름이 더 잘 녹입니다. 클렌징 오일이나 식용유를 면봉에 묻혀 자국 위를 살살 문지르면 왁스 성분이 녹아 나오기 시작하는데, 기름으로 녹인 뒤에는 주방세제를 조금 묻혀서 기름기를 닦아내고 마른 천으로 마무리합니다. 클렌징 오일을 처음 벽에 발랐을 때 이게 되겠나 싶었는데, 잠깐 두었다가 닦아내니 크레파스가 생각보다 잘 닦였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난 크레파스는 실크벽지라도 완전히 지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눌어붙은 왁스는 기름으로 녹여도 흔적이 남는데, 한 방법으로 끝내려 하지 말고 클렌징 오일로 한 번, 주방세제로 한 번, 다시 클렌징 오일로 한 번 이런 식으로 번갈아 쓰는 게 낫습니다. 저도 아이 낙서를 지우면서 그렇게 했는데, 한 번에 지우려 할 때보다 훨씬 잘 지워졌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생활화학제품 자료에 따르면 클렌징 오일이나 아세톤 등 유기용제를 실내에서 사용할 때는 환기를 충분히 해야 하고, 밀폐된 공간에서 오래 쓰면 호흡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뭘 써도 안 된다 싶으면 부분 도배가 오히려 빠릅니다. 무리하게 지우다가 벽지가 더 상하면 그 면 전체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되기도 하는데, 저도 그 경험을 한 번 하고 나서 어느 선에서 포기할지를 먼저 생각하게 됐습니다. 부분 도배 비용이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억지로 지우다 망가뜨리는 것보다 차라리 낫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