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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마다 선풍기를 틀다가 결국 에어컨으로 손이 갔는데, 작년에 쓰는 방식을 몇 가지 바꿔봤더니 버티는 날이 꽤 늘었습니다. 방향 하나, 위치 하나 바꾼 것뿐인데 체감이 달랐고, 창고에서 꺼낸 선풍기 청소 한 번 했을 뿐인데 바람 세기 자체가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대단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제대로 안 쓰고 있었던 겁니다.
선풍기 바람 시원하게 만드는 법
선풍기 바람이 더운 건 선풍기 탓이 아니라 실내 공기 자체가 덥기 때문입니다. 선풍기는 공기를 식히는 기계가 아니라 공기를 움직이는 기계라서, 실내 온도가 높으면 더운 공기를 그대로 날리는 겁니다. 선풍기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건 기화열 덕분입니다. 기화열이란 땀이 피부에서 증발할 때 피부 표면의 열을 빼앗아가는 현상으로, 바람이 그 증발 속도를 빠르게 만들어줘서 시원한 겁니다. 선풍기가 피부 위 공기를 계속 바꿔주니까 증발이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겁니다.
여기서 알아두면 쓸모 있는 게 습구온도입니다. 습구온도란 공기 중 수분이 증발할 때 실제로 내려가는 체감 온도를 말하는데, 습도가 높으면 땀이 잘 증발하지 않아서 선풍기를 틀어도 기화열 효과가 뚝 떨어집니다. 장마철에 선풍기를 강풍으로 틀어도 끈적하고 시원하지 않은 게 이 때문입니다. 저도 그게 선풍기 성능 문제인 줄 알았다가 습도 때문이라는 걸 알고 나서부터, 선풍기 틀기 전에 창문 열어서 환기하거나 제습 모드를 먼저 쓰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선풍기 앞에 얼음 물통을 두는 방법도 같은 원리입니다. 차가운 수분이 증발하면서 주변 공기 온도를 낮추고, 선풍기가 그 공기를 앞으로 밀어내는 방식입니다. 작은 대야에 얼음을 담아 선풍기 바로 앞에 두면 처음엔 별 차이 없나 싶다가 2, 3분 지나면서 달라지는 게 느껴집니다. 저는 얼음이 없을 때 물 채운 페트병을 냉동실에 얼려뒀다가 쓰는데, 얼음보다 오래가고 물도 안 흘러넘쳐서 지금은 이게 더 편합니다. 에너지기술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이렇게 증발 냉각을 활용하면 체감 온도를 2도에서 4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출처: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선풍기 위치와 방향 설정법
낮에는 창문 바깥쪽으로 향하게 틀어서 실내 더운 공기를 밖으로 밀어내고, 밤에 바깥 온도가 실내보다 낮아지면 반대로 창문 쪽에서 안으로 바깥 공기를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바꿉니다. 저는 오랫동안 무조건 몸 쪽으로만 향하게 틀었는데, 방향 바꾸고 나서 방 전체 공기가 달랐습니다. 저녁 10시 넘어서 창문 쪽으로 틀어두면 30분 안에 방 공기가 바뀌는 게 느껴지는데, 몇 년을 그냥 몸 쪽으로만 틀고 있었다는 게 좀 어이없기도 했습니다.
선풍기가 두 개 있으면 창문 쪽 하나, 반대편 벽 쪽 하나로 맞바람 배치를 하면 방 안에 공기 흐름이 생기면서 더운 공기가 빠져나갑니다. 에어컨과 같이 쓸 때는 에어컨 바람 방향과 직각으로 선풍기를 놓으면 찬 공기가 방 전체로 퍼지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에어컨 설정 온도를 24도에서 26도로 올려도 선풍기를 같이 돌리면 오히려 더 시원하게 느껴지는 날이 생겼고, 전기 요금도 줄었습니다.
높이도 신경 쓸 부분입니다. 더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공기는 바닥 쪽에 깔리는 성질이 있어서, 선풍기를 낮게 두면 그 차가운 공기층을 움직이는 데 더 낫습니다. 반대로 천장 쪽에 쌓인 더운 공기를 아래로 내리고 싶을 때는 선풍기를 위쪽으로 향하게 틀면 대류가 생기면서 방 전체 온도 편차가 줄어듭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는데, 선풍기를 위로 향하게 바꿨더니 5분쯤 지나니까 발 쪽부터 서늘해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바람이 얼굴에 직접 안 닿으니까 소용없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방 공기 자체가 바뀌는 거였습니다.
선풍기 필터 청소와 모터 관리
선풍기를 잘 배치해도 날개와 망에 먼지가 쌓이면 풍량이 떨어집니다. 먼지가 날개에 붙으면 공기 저항이 늘어나서 같은 속도로 돌아도 바람 양이 줄어드는데, 조금씩 쌓이는 거라 그냥 모르고 씁니다. 작년에 창고에서 꺼내서 틀었는데 예전보다 시원하지 않다 싶어서 분해해 봤더니 날개 뒷면에 먼지가 두껍게 층층이 붙어 있었습니다. 닦고 나서 다시 틀었더니 바람이 확 달랐고, 그때부터 여름 시작 전에 반드시 한 번씩 청소하게 됐습니다.
청소는 앞뒤 망을 분리해서 물로 씻고, 날개는 젖은 천으로 닦은 뒤 완전히 말리면 됩니다. 젖은 채로 조립하면 모터 쪽에 습기가 들어가서 고장이 날 수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대충 말리고 조립했다가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해서 놀란 적이 있는데, 잘 말렸더니 괜찮아지긴 했지만 그 뒤로는 그늘에서 두세 시간 건조한 다음에 조립합니다.
모터 과열도 바람이 약해지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모터 과열이란 장시간 가동으로 모터 내부 온도가 올라가면서 회전수가 떨어지는 현상인데, 오래된 선풍기일수록 자주 납니다. 6시간에서 8시간 이상 계속 틀었다면 한 번 꺼줬다가 다시 켜는 것만으로 바람이 살아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국에너지공단 자료에 따르면 선풍기는 에어컨 대비 소비 전력이 약 30분의 1 수준이지만, 먼지가 쌓이거나 모터가 과열된 상태에서는 정상 대비 소비 전력이 10에서 15퍼센트 더 높아질 수 있다고 합니다 (출처: 한국에너지공단).
선풍기를 제대로 쓰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입니다. 방향 바꾸고, 얼음 페트병 앞에 두고, 청소 한 번 제대로 했더니 에어컨 없이 버티는 날이 생겼습니다. 밤에 창문 쪽으로 향하게 틀어두는 것만으로 에어컨 없이 잠드는 날도 있었는데, 진작 이렇게 쓸 걸 싶었습니다. 이제라도 제대로 알게 되어서 올해는 선풍기에서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