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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묶음으로 사 온 슬라이스 치즈, 냉장고 문 쪽에 그냥 던져두신 분 많으실 겁니다. 저도 한동안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꺼내보니 끄트머리가 딱딱하게 굳어 있고, 개별 포장 안쪽에 물기가 맺혀 있더라고요. 그냥 먹기엔 찝찝하고, 버리기엔 아까운 그 상황. 치즈를 자주 사는 분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겁니다.

 

슬라이스 치즈는 보관이 특별히 어려운 식품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냉장고에 던져두다 보면 맛도 떨어지고, 멀쩡한 걸 버리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제가 직접 여러 방법을 써봤는데, 몇 가지 습관만 바꿔도 훨씬 오래,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치즈가 굳고 상하는 진짜 이유

슬라이스 치즈가 금방 굳거나 변질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산화(酸化)입니다. 산화란 치즈 표면이 공기 중 산소와 반응해 맛과 향이 변하는 현상인데, 개봉 후 포장을 제대로 닫지 않으면 이 반응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됩니다.

 

두 번째는 수분 활성도(water activity) 변화입니다. 수분 활성도란 식품 안에서 미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자유 수분의 비율을 말하는데, 냉장고 안 건조한 환경에서 치즈 표면의 수분이 날아가면서 끝부분부터 딱딱하게 굳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반대로 습기가 많은 곳에 두면 표면에 수분이 맺혀 곰팡이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냉장고 문 쪽은 온도 변화가 잦아서 이 두 현상을 모두 부추깁니다. 저도 처음엔 같은 냉장고 안인데 위치가 뭐가 중요하냐 싶었는데, 직접 비교해보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문 선반에 뒀던 치즈는 일주일도 안 돼 끄트머리가 굳었고, 안쪽 선반에 뒀던 건 2주가 넘어도 부드러운 상태였습니다. 위치 하나 차이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한 가지 더 알아두면 좋은 게 있습니다. 슬라이스 치즈는 가공치즈입니다. 가공치즈란 자연치즈에 유화염 같은 식품 첨가물을 넣어 가열 처리한 것인데, 자연치즈보다 보존성은 높지만 개봉 후에는 보관 방법에 따라 품질 차이가 생각보다 크게 납니다. 가공식품이니까 대충 둬도 괜찮겠지 싶은 마음, 저도 처음엔 그랬는데 직접 겪어보니 아니더라고요.

 

냉장 보관, 위치와 밀폐가 전부다

2023년 1월 1일부터 식품에 소비기한 표시제가 시행되면서, 치즈 포장에도 소비자가 안전하게 섭취 가능한 기한을 직접 표기하도록 바뀌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예전엔 유통기한 날짜만 보고 지났으면 바로 버렸는데, 소비기한으로 바뀌고 나서 기준이 훨씬 명확해졌습니다. 슬라이스 치즈는 규정된 보관 조건을 지켰을 때 유통기한 이후에도 최대 70일까지 섭취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게 미개봉 밀봉 상태 기준이라는 걸 모르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저도 이걸 알고 나서 그동안 멀쩡한 치즈를 얼마나 많이 버렸나 싶었습니다.

 

개봉 후 냉장 보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밀폐입니다. 개별 포장이 있더라도 팩 전체를 지퍼백이나 밀폐용기에 다시 넣어두는 게 좋습니다. 저는 처음엔 개별 포장이 있으니 그냥 놔둬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지퍼백에 넣어서 보관해 보니 2주가 넘어도 상태가 확연히 달랐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인데 왜 진작 안 했나 싶었습니다.

 

보관 위치도 그냥 넘기면 안 됩니다. 냉장실 안쪽 중간 선반이 가장 낫습니다. 문 선반은 열 때마다 온도가 오르내려서 콜드체인(cold chain), 즉 일정한 저온 환경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유제품을 0도에서 5도 사이에서 관리하는데, 국내 기준은 0도에서 10도 사이로 허용 범위가 넓어 가정에서 보관 위치를 잘 잡는 게 더 중요합니다. (라이프인 뉴스) 안쪽에 두는 게 귀찮게 느껴질 수 있는데, 한 번 자리를 잡아두면 그다음부터는 별로 신경 쓸 일이 없습니다.

 

냉동 보관, 이렇게 하면 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치즈는 냉동하면 맛이 변한다고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슬라이스 치즈는 개별 포장이 되어 있어서 자연치즈보다 냉동 보관이 훨씬 수월합니다. 개별 포장 상태 그대로 지퍼백에 넣고 공기를 최대한 뺀 뒤 냉동하면 됩니다. 꺼낼 때는 냉장실로 옮겨서 하루 정도 천천히 해동하는 게 좋은데, 저는 처음에 귀찮아서 꺼내자마자 바로 썼다가 빵에 올렸을 때 식감이 뭔가 다르더라고요. 그 뒤로는 전날 냉장실로 옮겨두는 걸 꼭 지킵니다.

 

냉동 과정에서는 단백질 변성(protein denaturation), 즉 치즈 내부의 단백질 구조가 일부 바뀌는 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동 후에 그냥 먹기보다는 계란말이나 샌드위치처럼 열을 가하는 요리에 쓰는 게 맛 차이를 거의 못 느끼는 방법입니다. 저는 한 달치를 한 번에 사서 절반은 냉장, 절반은 냉동으로 나눠두는데 이 방식이 제일 낭비가 없었습니다.

 

보관 기간은 6개월 이내가 적당합니다. 그 이상 넘기면 이미·이취(off-flavor), 즉 냉동 특유의 냄새가 배어들어 맛이 많이 떨어집니다. 실제로 6개월 넘긴 걸 한 번 먹어봤는데,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냉동 냄새가 은근히 올라와서 결국 버렸습니다. 넉넉하게 쟁여두는 건 좋은데, 가끔 날짜 확인은 해주는 게 좋습니다.

 

지금까지 슬라이스 치즈 보관법을 정리해봤습니다. 개봉 후에는 지퍼백에 밀폐해서 냉장고 안쪽에 두고, 2주 넘게 두고 먹을 것 같으면 그냥 냉동 보관하는 게 낫습니다. 포장에 적힌 소비기한을 기준으로 삼되, 개봉 후에는 그 기준도 짧아지니 되도록 빨리 먹는 게 맞습니다.

 

제가 직접 여러 방법을 써보면서 느낀 건, 이게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겁니다. 지퍼백 하나, 보관 위치 하나만 바꿔도 치즈 상태가 달라지고, 냉동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낭비도 확 줄어듭니다. 예전엔 냉동하면 무조건 맛이 없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요리에 쓸 땐 솔직히 차이를 못 느꼈습니다. 치즈 한 팩을 끝까지 맛있게 다 쓰는 일, 알고 나면 어렵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