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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선반에 올려둔 식용유를 꺼내 쓰다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걸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유통기한은 아직 6개월이나 남아 있었는데 뭔가 쿰쿰하고 쓴 냄새가 올라왔습니다. 그냥 쓰기는 꺼림칙해서 버렸는데, 식용유는 유통기한 안에 있어도 보관 방법에 따라 이미 산화가 진행될 수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식용유는 거의 매일 쓰는 식재료인데 의외로 보관을 대충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냄새가 변하는지부터 올바른 보관법과 개봉 후 실제 사용 가능한 기간까지 적어봤습니다.

 

1. 식용유가 산화되는 이유

식용유가 상하는 주된 원인은 산화입니다. 산화란 식용유의 지방 성분이 공기 중 산소와 반응하면서 변질되는 현상으로, 이 과정에서 불쾌한 냄새와 쓴맛이 생깁니다.

 

식용유 산화는 크게 두 경로로 진행됩니다. 하나는 자동산화입니다. 자동산화란 식용유가 공기에 노출되면서 산소와 지방산이 반응해 과산화물을 만들고, 이 과산화물이 다시 분해되면서 냄새 물질을 만드는 연쇄 반응입니다. 한번 시작되면 가속도가 붙어 빠르게 진행됩니다. 다른 하나는 열에 의한 산화입니다. 가스레인지 옆에 식용유를 두면 조리 중 발생하는 열과 빛이 산화를 가속시킵니다.

산화가 진행된 식용유에서는 유리지방산이 증가합니다.

 

유리지방산이란 식용유 내 지방이 분해되면서 생기는 산성 물질로, 이 수치가 높아질수록 발연점이 낮아지고 기름 냄새와 쓴맛이 강해집니다. 발연점이란 식용유를 가열했을 때 연기가 나기 시작하는 온도입니다. 신선한 포도씨유의 발연점은 약 216도지만 산화가 진행되면 160도 이하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저도 오래된 식용유로 부침개를 부쳤더니 평소보다 훨씬 낮은 온도에서 연기가 나서 처음에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빛도 산화를 가속시킵니다. 투명 유리병에 담긴 식용유를 창가에 두면 자외선이 산화 반응을 빠르게 끌어당깁니다. 마트에서 식용유를 불투명하거나 짙은 색 용기에 담아 파는 건 이 때문입니다.

 

2. 올바른 보관 용기와 장소

개봉 전 식용유는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 보관하면 제품에 적힌 유통기한까지 품질이 유지됩니다. 문제는 개봉 후입니다.

개봉한 식용유는 공기와 접촉이 시작되면서 산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용기 선택이 중요합니다. 시중에서 파는 대용량 페트병 식용유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페트 소재는 빛 차단이 잘 안 되고 뚜껑을 반복해서 열면 공기 유입이 많아집니다.

 

자주 쓰는 양만큼 작은 불투명 유리병이나 스테인리스 오일 디스펜서에 옮겨 담아 쓰면 산화 속도가 늦춰집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같은 식용유를 페트병에 그대로 둔 것과 작은 유리병에 옮겨 담은 것의 냄새 차이가 두 달 뒤에 확실히 났습니다.

 

보관 장소는 가스레인지 옆이 가장 피해야 할 곳입니다. 요리할 때 나오는 열기가 식용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저도 요리 편의상 가스레인지 옆에 두다가 유통기한이 훨씬 남은 식용유에서 냄새가 나는 걸 경험하고 나서야 찬장 안으로 옮겼습니다. 직사광선이 닿지 않고 온도 변화가 적은 찬장 안이 가장 좋습니다.

 

냉장 보관은 식용유 종류에 따라 다릅니다. 올리브유나 들기름처럼 불포화지방산 함량이 높은 기름은 냉장 보관하면 산화를 늦출 수 있습니다. 냉장고에서 꺼내면 굳거나 뿌옇게 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정상이고 실온에 두면 다시 투명해집니다. 반면 일반 식용유나 포도씨유는 서늘한 실온 보관으로 충분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식용유는 고온, 빛, 공기 노출이 산화를 촉진하는 3대 요인이며, 개봉 후에는 이 세 가지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보관해야 품질이 유지된다고 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3. 개봉 후 유통기한과 상태 확인법

식용유 포장에 적힌 유통기한은 미개봉 상태 기준입니다. 개봉한 순간부터는 별도 기준이 적용됩니다.

일반적으로 개봉 후에는 2개월에서 3개월 이내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들기름과 참기름은 불포화지방산 함량이 높아 산화가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개봉 후 냉장 보관하고 1개월에서 2개월 안에 쓰는 게 낫습니다.

 

한국소비자원 자료에 따르면 개봉 후 장기간 보관한 식용유에서 과산화물 수치가 기준치를 초과한 사례가 보고됐으며, 산화된 식용유를 지속 섭취할 경우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한국소비자원)

 

과산화물이란 산화 과정에서 생성되는 불안정한 화합물로, 이 수치가 높은 식용유는 유통기한 내에 있어도 품질이 저하된 것으로 봅니다.

 

집에서 식용유 상태를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냄새입니다. 신선한 식용유는 거의 냄새가 없거나 고소한 향이 나는데, 산화된 식용유는 쿰쿰하거나 페인트 냄새 같은 이취가 납니다. 색이 짙어지거나 뿌옇게 변했다면 산화가 많이 진행된 상태입니다. 소량을 가열했을 때 평소보다 빨리 연기가 난다면 발연점이 낮아진 것으로, 이런 기름은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식용유는 남은 양이 많아도 오래됐다면 과감히 버리는 편이 낫습니다. 산화된 식용유로 요리하면 음식 맛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조리 중 발생하는 연기 자체도 몸에 좋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