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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핸드폰을 변기에 빠뜨린 적이 있습니다. 반사적으로 건져서 화면을 확인했는데 켜지긴 했습니다. 그냥 수건으로 닦고 계속 쓰다가 다음 날 아침에 화면이 나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물기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전원이 켜져 있었던 게 문제였습니다.

 

전자기기가 물에 약한 이유

전자기기 내부는 아주 얇은 전선과 납땜으로 연결된 회로 기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평소에는 전류가 설계된 경로대로만 흐르는데, 물이 들어오면 경로가 달라집니다. 수돗물이나 바닷물처럼 미네랄이 녹아 있는 물은 전기를 잘 전달하는데, 이를 전기 전도성이라고 합니다. 전기 전도성이란 물질이 전류를 흘려보내는 능력으로, 수분이 회로 기판 위에서 전류를 엉뚱한 경로로 흘려보내면 부품이 타거나 쇼트가 납니다.

 

전원이 켜진 상태에서 물이 들어오면 피해가 커집니다. 전류가 흐르는 상태에서 물이 닿으면 즉시 쇼트가 나지만, 전원이 꺼진 상태라면 수분이 증발하기 전까지 기판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에 빠진 직후 전원 버튼을 눌러보는 게 가장 흔한 실수인데, 켜지면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젖은 회로에 전류를 흘려보내는 격입니다.

 

더 큰 문제는 당일 잘 작동해도 며칠 뒤에 고장 나는 경우입니다. 내부에 남은 미세한 수분이 부식(corrosion)을 일으킵니다. 부식이란 금속 표면이 수분과 산소에 반응해 산화되면서 손상되는 현상인데, 기판 위 금속 접점이 조금씩 산화되다가 어느 순간 신호가 끊깁니다.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하고 며칠을 쓰다가 갑자기 꺼지는 게 이 경로입니다.

 

침수됐을 때 대처 방법

건진 직후

일단 전원부터 꺼야 합니다. 꺼져 있다면 켜보려 하면 안 되고, 배터리가 분리되는 기기라면 배터리도 즉시 빼야 합니다. 충전 중이었다면 콘센트를 먼저 뽑아야 합니다.

 

물기는 마른 천이나 키친타월로 빠르게 닦아냅니다. 기기를 흔들거나 두드리면 물이 더 안쪽으로 밀려 들어갑니다. 통풍구나 충전 단자 쪽은 물이 고이기 쉬워서 꼼꼼하게 닦아야 합니다. 드라이어는 쓰면 안 됩니다. 뜨거운 바람이 부품에 열 손상을 주고, 바람 압력이 오히려 수분을 안쪽으로 밀어 넣습니다.

 

쌀통에 넣으면 된다는 것, 사실일까

쌀에 넣으면 수분을 흡수해준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는데, 반만 맞습니다. 쌀이 수분을 흡수하기는 하지만 속도가 느리고, 쌀가루 같은 미세한 먼지가 단자 안으로 들어가 이물질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실리카겔 제습제가 훨씬 빠릅니다. 실리카겔이란 이산화규소를 다공질 구조로 만든 건조제로, 표면적이 넓어서 주변 수분을 빠르게 흡수합니다. 밀폐 용기에 기기와 실리카겔을 함께 넣어두면 쌀통과 비교가 안 됩니다.

 

그래도 가장 좋은 건 서비스센터에 바로 가는 겁니다. 침수 직후 전문 장비로 내부를 건조하고 부식 여부를 확인하면 완전 고장을 막을 수 있습니다. 작동이 되더라도 내부 부식은 이미 시작됐을 수 있어서 침수됐다면 점검은 받아두는 게 낫습니다.

 

바닷물에 빠졌을 때

민물보다 바닷물이 훨씬 위험합니다. 염분이 전기 전도성을 높이고 금속 부식도 가속시킵니다. 바닷물에 빠졌을 때는 건진 즉시 전원을 끄고, 흐르는 수돗물로 겉면을 빠르게 헹궈서 염분을 먼저 씻어내야 합니다. 그 뒤 물기를 닦고 서비스센터로 가는 게 순서입니다.

 

방수 등급이 있는 기기도 예외는 아닙니다

요즘 스마트폰 대부분은 IP67, IP68 같은 방수 등급을 표시합니다. IP68이란 수심 1.5미터에서 30분까지 견디는 성능을 뜻합니다. 다만 이 등급은 새 제품 기준이고, 쓰면서 생기는 미세한 흠집이나 고무 패킹 노화로 성능은 서서히 낮아집니다. 2~3년 된 방수 폰이 물에 빠져 고장 나는 이유입니다.

 

한국소비자원 자료에 따르면 스마트폰 침수 피해 중 방수 등급 제품임에도 침수가 발생한 비율이 전체의 2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소비자원).

 

건조 후 확인해야 할 것들

최소 48시간은 전원을 끈 채로 두어야 합니다. 켜진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닙니다.

침수 후 며칠 사이에 나타나는 증상들이 있습니다. 화면 가장자리에 얼룩이나 물방울 자국이 보이거나, 터치가 군데군데 안 먹히거나, 소리가 먹먹하게 나오거나, 마이크 음질이 달라졌다면 수분이 남아 있거나 부식이 시작됐다는 신호입니다. 배터리가 갑자기 빠르게 닳는 것도 침수 이후에 나타나는 흔한 증상 중 하나입니다.

 

충전 단자에 물기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충전하면 단자가 손상됩니다. 아이폰은 단자에 수분이 감지되면 경고 메시지가 뜨는데, 그 메시지가 사라질 때까지 충전을 미뤄야 합니다. 안드로이드는 별도 경고가 없는 기종이 많아서 최소 24시간은 충전하지 않는 쪽이 안전합니다.

 

행정안전부 재난안전 정보에 따르면 침수된 전자기기는 외관상 이상이 없더라도 내부 부식으로 인한 2차 고장 위험이 있어 전문 점검을 권고하고 있습니다(출처: 행정안전부).

 

변기에 빠뜨린 핸드폰은 결국 액정 교체를 했습니다. 서비스센터 직원 말로는 건진 뒤 전원만 바로 껐어도 기판은 살릴 수 있었을 거라고 했습니다. 물에 빠졌을 때 제일 먼저 할 건 켜지는지 확인하는 게 아니라 전원을 끄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