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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기를 쓰면서 물을 그냥 사 먹는 것보다 훨씬 위생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물이 나오는 코크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안쪽에 뭔가 끈적하고 거무스름한 것이 붙어 있었습니다. 렌털 서비스를 쓰고 있으니 알아서 다 관리되는 줄 알았는데, 점검 사이사이에 직접 챙겨야 하는 부분이 따로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의식했습니다. 그 뒤로는 정수기 물을 마실 때마다 마음 한편이 찜찜해져서 제대로 찾아보게 됐습니다.

 

정수기는 관리가 안 된 상태에서는 오히려 수돗물보다 위생 상태가 나쁠 수 있습니다. 필터가 오염되거나 내부에 세균이 번식한 채로 계속 쓰면 정수 기능은 사라지고 오염된 물을 마시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필터 종류별 교체 주기부터 코크 청소, 저수조 관리까지 짚어보겠습니다.

 

1. 정수기 내부가 오염되는 이유

정수기 내부 오염의 주된 원인은 바이오필름(biofilm) 형성과 잔류염소(殘留鹽素) 제거 이후 발생하는 세균 증식입니다. 바이오필름이란 세균이 집단으로 뭉쳐 관이나 용기 내벽에 만드는 끈적한 막입니다. 수돗물에는 세균 억제를 위해 잔류염소가 들어 있는데, 정수기 필터를 거치면서 이 염소 성분이 걸러집니다. 깨끗해진다는 점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염소가 빠진 물은 세균이 번식하기 더 좋은 환경이 됩니다. 정수기 내부 저수조나 배관에 한 번 바이오필름이 자리를 잡으면 일반 세척으로는 잘 없어지지 않습니다.

 

코크 오염도 생각보다 빨리 진행됩니다. 물이 나오는 코크는 공기 중 세균과 직접 닿는 부위인 데다, 컵이 부딪히거나 손이 스치는 일도 잦습니다. 끈적한 막이 생긴 코크를 직접 확인하고 나서 그동안 이 상태의 코크를 통해 나온 물을 마셨다는 사실이 꽤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세디먼트(sediment) 필터가 포화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세디먼트 필터란 물속 미세 입자, 녹, 모래 등을 1차로 걸러내는 필터를 말합니다. 이 필터가 한계에 달하면 걸러야 할 이물질이 그대로 다음 필터로 넘어가면서 전체 정수 효율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먹는물 관리 자료에 따르면 정수기 내부는 정기적인 위생 점검과 필터 교체 없이는 세균 오염 위험이 지속적으로 존재하며, 특히 저수조 방식 정수기는 여름철 세균 증식이 빠르게 진행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2. 정수기 필터 종류별 교체 주기

정수기 필터는 종류마다 역할과 교체 주기가 다릅니다. 렌털 회사 점검 일정에만 맡기다 보면 정작 교체 시점을 놓치는 경우가 생깁니다. 어떤 필터가 들어 있는지 직접 파악해 두면 관리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① 세디먼트 필터

세디먼트 필터는 3-6개월마다 교체하는 것이 기준입니다. 오래된 건물에 사는 경우 배관 녹물이 섞일 수 있어 교체 주기를 더 짧게 잡는 것이 좋습니다. 이사 직후 처음으로 필터를 꺼내봤더니 세디먼트 필터가 예상보다 훨씬 심하게 오염되어 있었는데, 건물 배관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② 중공사막 필터 또는 역삼투압 필터

중공사막(hollow fiber membrane) 필터란 머리카락보다 훨씬 가는 실 모양의 막으로 세균과 바이러스를 거르는 필터입니다. 역삼투압(reverse osmosis) 필터란 삼투압 원리를 역으로 이용해 중금속과 이온성 물질까지 제거하는 고성능 필터입니다. 중공사막 필터는 1-2년, 역삼투압 필터는 2-3년이 교체 기준입니다. 두 필터 모두 겉으로 오염 여부를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주기를 기준으로 교체해야 합니다.

 

③ 활성탄 필터

냄새와 염소 성분 제거를 담당하는 활성탄 필터는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교체합니다. 수명이 다하면 물맛이 달라지거나 수돗물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정수기 물에서 갑자기 염소 냄새가 난다면 활성탄 필터를 가장 먼저 의심해봐야 합니다.

 

3. 정수기 위생 관리 방법

필터 교체만큼 중요한 것이 코크와 외부 청소입니다. 렌털 서비스 점검이 3-6개월 간격인 경우가 많은데, 그 사이에도 직접 챙겨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① 코크 청소

코크는 최소 2주에 한 번 닦아야 합니다. 분리가 가능한 제품이라면 중성세제로 세척한 뒤 완전히 건조시킵니다. 분리가 안 되는 구조라면 면봉에 식초를 묻혀 안쪽을 닦아내면 바이오필름 제거에 효과적입니다. 코크를 주기적으로 닦기 시작하고 나서 안쪽에 끈적한 게 생기는 빈도가 줄었습니다.

 

② 외부 표면 청소

주방 가까이 두는 경우가 많아 기름때와 먼지가 쌓이기 쉽습니다. 부드러운 천에 중성세제를 묻혀 주 1회 닦고, 물기가 남지 않도록 마른 천으로 마무리합니다.

 

③ 저수조 방식 정수기 관리

저수조가 있는 방식은 내부를 주기적으로 비우고 세척해야 합니다. 특히 여름철에 며칠 집을 비웠다 돌아온 뒤 정수기 물에서 이상한 맛이 난 적이 있었는데, 저수조에 물이 오래 고여 있던 게 원인이었습니다. 더운 계절에는 자리를 비우기 전에 저수조를 비워두고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환경부 먹는물 위생 관리 자료에 따르면 가정용 정수기는 정기 점검과 사용자 직접 관리가 함께 이뤄질 때 음용수 위생이 유지되며, 관리가 소홀한 정수기 내부에서 수돗물보다 높은 세균 수치가 측정된 사례가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환경부)

 

렌털 서비스를 쓰면 알아서 관리된다고 생각했던 시절에는 코크 청소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코크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점검 주기 사이에 생기는 오염은 결국 직접 챙길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렌털이든 자가 소유든 그 사이 관리는 쓰는 사람이 해야 합니다.

 

코크는 2주마다 닦고, 필터 교체 날짜는 직접 기록해 두고, 여름에 자리를 비울 때는 저수조를 비워두는 것이 좋습니다. 이 글 쓰기 전에 저희 집의 정수기 코크를 살펴봤는데 아주 새까맣게 오염되어 있어서 끔찍했습니다. 이런 상태의 코크로 지금까지 물을 마셨다니 너무나도 충격적입니다. 이제는 진짜 정수기 청소를 주기적으로 꼭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