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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청바지를 몇 번 빨다 보면 어느 날 색이 바래 있습니다. 분명 아끼는 바지였는데 서랍에서 꺼내보면 허벅지나 엉덩이 쪽이 유독 더 빠져 있고, 전체적으로 뿌옇게 흐려진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 제대로 청바지를 망가뜨렸을 때 어떻게 된 건지 감이 없었습니다.
세탁기에 넣고 뜨거운 물로 돌렸고, 탈수도 길게 했고, 건조기까지 썼는데 꺼내보니 핏이 줄어 있고 색은 칙칙하게 바래 있더라고요. 세탁이 잘못된 거라고 생각도 못 하고 원단 문제인가 했는데, 나중에 보니 전부 세탁 방식이 원인이었습니다.
청바지 색이 바래는 건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그 속도를 얼마나 늦추느냐는 세탁 방법에 달려 있습니다.
청바지 세탁법
청바지에서 색이 빠지는 원인은 염색 방식에 있습니다. 청바지에 쓰이는 인디고 염료(indigo dye)란 천연 혹은 합성 성분으로 만든 청색 염료로, 일반 염료처럼 섬유 깊숙이 스며드는 방식이 아니라 원단 표면에 층층이 쌓이는 방식으로 염색됩니다. 섬유와 완전히 결합하지 않고 표면에 흡착만 돼 있는 구조라, 열이나 마찰이 가해질 때마다 조금씩 떨어져 나갑니다.
청바지의 인디고 염료는 섬유 내부까지 깊이 침투하지 않고 표면에 주로 코팅된 형태라 마찰과 열, 세제에 쉽게 떨어져 나가며, 특히 첫 세탁에서 색이 가장 많이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어떻게 다루느냐가 이후 색상 유지 기간을 크게 좌우합니다. (푸드레시피) 첫 세탁에서 뜨거운 물과 긴 탈수로 한꺼번에 날린 뒤에는 이후 아무리 신경 써도 돌이킬 방법이 없습니다. 저는 그걸 몸으로 배웠습니다.
데님(denim)이란 인디고 염료로 염색한 굵은 면사로 짠 능직 원단으로, 이 원단의 특성상 탈색 자체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착용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바람은 데님 특유의 매력이기도 한데, 문제는 세탁 때 생기는 균일한 탈색입니다. 자연스럽게 바래는 게 아니라 전체가 한꺼번에 뿌옇게 변하는 건데, 청바지를 오래 입어본 사람이라면 그 차이를 압니다.
물 온도가 핵심입니다. 뜨거운 물은 섬유 조직을 팽창시켜 표면에 붙어 있던 인디고 염료가 더 쉽게 떨어지게 만듭니다. 찬물은 반대로 섬유를 수축시킨 상태로 유지해서 염료가 덜 떨어지는데, 세탁 후 물 색깔을 비교해 보면 뜨거운 물과 찬물 사이에 차이가 납니다. 찬물 쪽이 훨씬 옅게 나옵니다. 세제도 달라야 합니다. 일반 세탁 세제에는 형광증백제와 강한 계면활성제(surfactant)가 들어 있는데, 계면활성제란 기름과 물 사이에서 계면 장력을 낮춰 오염을 씻어내는 성분으로, 지나치게 강하면 염료와 섬유의 결합까지 느슨하게 만들어 탈색을 앞당깁니다. 청바지에는 중성세제를 써야 하는 이유가 이겁니다.
뒤집어 빨기
세탁기에 넣기 전에 뒤집는 것만으로도 표면 손상이 줄어듭니다. 세탁기 안에서 옷끼리 부딪히는 과정에서 마찰이 생기는데, 뒤집으면 안쪽 면이 마찰을 받고 바깥면은 보호됩니다. 지퍼와 버튼도 채워야 합니다. 열린 지퍼는 세탁 중에 다른 옷이나 세탁조에 걸려서 원단에 미세한 상처를 남기는데, 그게 반복되면 그 자리부터 색이 먼저 빠지기 시작합니다. 저는 지퍼 열린 채로 돌렸다가 안쪽에 잘게 걸린 자국들이 생겼고, 그 뒤로는 귀찮아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첫 세탁 전에 소금물에 담그는 것도 색 빠짐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됩니다. 소금의 나트륨 염화물 성분이 청바지 염료와 결합하여 물에 녹아나가는 것을 막아주며, 소금의 이온이 염료 분자와 결합해 섬유에 더 잘 붙게 만드는 화학반응이 일어납니다. (푸드레시피) 물 10에 소금 1 비율로 섞어서 30분 정도 담갔다가 헹구고 세탁하면 됩니다. 새 청바지마다 이 과정을 거치는데, 처음 몇 번 세탁에서 색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게 줄었습니다.
강한 탈수는 피해야 합니다. 섬유끼리 격렬하게 부딪히는 과정에서 표면이 손상되고 염료가 떨어집니다. 탈수 시간은 짧게, 세탁 코스는 울이나 섬세 코스로 설정하면 됩니다.
단독 세탁과 건조
이염(color bleeding)이란 한 옷의 염료가 세탁 중 다른 옷으로 옮겨가는 현상인데, 인디고 염료는 이염이 특히 잘 됩니다. 처음 이걸 몰랐을 때 흰 면 티셔츠를 청바지와 같이 넣었다가 옅은 파란빛이 베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지우려고 별짓을 다 해봤는데 안 빠졌습니다. 청바지는 단독으로 돌리거나 같은 계열 색상끼리만 묶어서 돌려야 합니다.
건조는 그늘에서 자연 건조가 맞습니다. 건조기는 열로 섬유를 수축시키고 색을 함께 날립니다. 건조기를 한 번 쓴 뒤에 핏이 짧아지고 색이 뭉텅 빠졌던 경험이 있어서, 그 뒤로는 청바지에 건조기를 쓰지 않습니다. 직사광선도 피해야 하는데, 햇빛이 인디고 염료를 직접 자외선으로 분해하면서 색을 날립니다. 건조대에 뒤집은 채로 그늘에 걸어두는 것만으로도 색이 오래 유지됩니다.
청바지 색이 오래가는 집과 금방 바래는 집의 차이는 세탁기 설정이나 비싼 세제에 있지 않습니다. 뒤집었느냐, 찬물로 했느냐, 다른 옷이랑 같이 넣지 않았느냐, 이 세 가지 습관 차이입니다. 저도 이걸 알기 전까지는 청바지가 원래 금방 바래는 옷인 줄 알았는데, 방법을 바꾸고 나서 같은 가격대 청바지를 훨씬 오래 입게 됐습니다. 세탁 방법이 옷의 수명을 이렇게 크게 갈라놓는다는 게 처음에는 좀 황당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당연한 얘기가 됐습니다.

